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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나, 건축가 구마 겐고

_물곰 2023. 3. 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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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할 때는 주로 루이보스차를 마신다. 아무리 긴 출장이라도 검은색 여행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닌다.

 

- 제 현장에 한 번 와보세요. 중국에서는 이를테면 공사 도중에 창을 작게 해달라는 주문이 떨어집니다. 중국은 창이 크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어 창의 크기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제를 해마다 갱신하고 있습니다. 그 조령모개가 공사 중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일본이라면, 그보다 모든 법치국가에서는 상부가 건축 확인 신청을 인정했으면, 공사 도중에 뭔가를 바꾸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승인이 떨어진 뒤에도 공사 도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수정 요구가 들어옵니다. 그런 간섭을 받을 때마다 이게 뭔가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상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런 간섭에 어떻게 현명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중국에는 애당초 객관적인 기준이란 게 없습니다.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정부에 신청하고 담당 공무원과 교섭합니다. 그러면 그 교섭에서 해당 공무원의 이권이 한없이 생깁니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건축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거칠고 비정한 세계입니다. 중국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수천 년간 내려온 지혜의 응축이라고 하죠. 그 교섭을 위한 도면 제작에 매일 쫓기고 "내일까지 이렇게 바꿔주세요."든가 "OO를 더해주세요."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도중에 몇 번이나 "못 해 먹겠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달려온 덕에 중국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조금씩 강해졌습니다. 

 

- 중국인은 건축에 대한 경의가 있어서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베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해적판이 나오면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도 인정을 받았군요."라고 말합니다. "이 디자인이 멋지다고 생각하니까 베끼는 겁니다. 인정받아서 다행입니다."라는 논리입니다. 

 

중국의 오너 문화

- 중국 클라이언트를 일본 클라이언트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모두 기본적으로 오너(owner)라는 점입니다. 일본처럼 '사원'이 아닙니다. 일본이 '샐러리맨문화'라면, 중국은 '오너문화' 또는 '하향식문화'라고 할까요? 아무리 공산주의라고는 해도 그런 문화가 무척 강합니다. 한편 일본은 오너조차 샐러리맨 같습니다. 일본 기업은 오너라는 존재가 있으면서도 실제 결정 사항은 샐러리면 구조에 의존하지 않으면, 오너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너처럼 행동하면 회사가 이상해지든지 본인이 쫓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건축, 역사에 남을 건축은 샐러리맨 시스템에서는 탄생하지 않습니다. 샐러리맨 구조란 위험을 피하는 시스템입니다. 오늘날에는 건축 세계도 점점 소송사회로 바뀌어서 어떻게 하면 소송을 회피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소송 회피야말로 샐러리맨 구조의 목적이 되어버린 겁니다. 

 

- 중국에서는 처음부터 반드시 오너와 만나고, 오너와 술을 마시는 일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은 왜일까요? 그들과 신뢰 관계를 확립하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인간'을 봅니다. 중국에서 자주 마시는 술은 '백주'라는 독한 술로, 잔이 몇 번 오가면 꽤 취하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얼마나 무너지지 않는지 테스트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해야 하지만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미묘한 균형이 가장 중요합니다. 

 

프랑스

- 중국만큼이나 프로젝트가 많은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두 나라는 다른 문화에 대한 허용도가 넓고 존중하는 마음도 강하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앞에서 '21세기 건축가는 국제 레이스에 출전을 강요당하는 경주마'라고 말했는데, 경주마에게 가장 후한 게 프랑스입니다. 포도주나 샴페인을 대접해 주는 문화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출전 요금'이 붙습니다. 문화의 가치를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정확히 말하면 문화를 이용할 때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 유럽연합에서는 건축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공모전으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공모전에 대한 보수 체계는 각국이 저마다 다른데 그 가운데에서도 프랑스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유대인

- 미국의 도시개발은 금융자본이 주도하는데, 그것을 움직이는 게 주로 유대인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 건축계는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도 유대인이 많습니다. 유대인은 청각문화보다 시각문화에 강하다고 합니다. 속설이기는 한데, 소리가 거의 없는 사막 같은 장소에서 생활해서 화가나 조각가는 많지만, 음악가가 적다고 합니다. 그 속설은 "그래서 유대인은 건축을 좋아한다."로 이어집니다. 

 

러시아

- 러시아인은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현장에 올때는 중학교 스포츠팀이 똑같은 점퍼를 입고 시끌벅적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인 남성에게는 중학교 동아리 같은 친밀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보드카 같은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도

- 인도인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기, 제가 보이세요?" 하며 눈 앞에서 손을 흔들고 싶어집니다. 인도에서는 어디서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레이스에 참가한다고 해도 어디를 향해 달려야 할지 모릅니다.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 원칙조차 지금 보이지 않습니다.

 

옛 건물에 익숙한 사람들

- 옛 건물에 익숙한 사람들은 새 건물을 절대로 칭찬하지 않는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모두 "옛날이 좋았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네즈미술관도 나쁘지 않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이라고 해야 자기 경험의 깊이와 박식함을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그런 것 외에는 자랑거리가 없어지나 봅니다. 

 

- 완성됐을 때 극착을 받는 건축물은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새로운 건물은 도시에서 이물질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가부키극장이 익숙했던 사람은 노후화된 건물의 위험이 아니라 세월을 거친 어슴푸레함과 여기저기의 더러움이 친숙해서 새로운 재료에 밝은 조명이 달린 것만으로 "이건 가부키극장이 아니야."라고 거부반응을 보이겠죠. 역사적인 건축의 창조 과정에 참가한 사람이 완성될 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예는 건축사를 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거의 대부분이 호되게 욕을 먹습니다. 

 

이를테면 파리의 오페라극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페라극장은 '가르니에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지금은 온 세상 사람들이 "이게 없으면 파리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파리를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완성됐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지독한 건물이라고 엄청난 악평을 들으며 건축가인 샤를르 가르니에는 준공식에 초대받지도 못했습니다. 에펠탑 완성 당시 악평을 받은 이야기는 유명한데, 저렇게 구석구석까지 연구한 것처럼 보이는 오페라극장도 비판의 폭풍우를 피해가지는 못했습니다.

 

뉴욕의 WTC도 마찬가지입니다. WTC는 뉴욕 항만국 국장이었던 오스틴 터빈이 거의 혼자서 진행한 건물인데 그는 결국 준공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건축가로 기용된 일본계의 미노루 야마사키도 무시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 건물이 평가를 받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파괴됐을 때입니다. 9.11 테러를 당하고 처음으로 WTC야말로 뉴욕이었다고 모두가 생각했던 겁니다.

 

주택담보대출의 탄생

건축 세계에서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출현한 '모더니즘'이라는 스타일이 일세를 풍미하며 세계적인 유행이 됐습니다. 모더니즘이란 콘크리트, 철, 유리를 사용한 기능적이고 투명한 공업사회의 제복 같은 건축 양식을 가리킵니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누구나 들어본 적 있는 유럽의 '거장'이 모더니즘을 탄생시킨 아버지입니다.

 

모더니즘을 탄생시킨 것은 유럽이지만 그 양식을 폭발적으로 확대한 건 미국이었습니다. 그 계를 만든 게 주택담보대출의 발명과 자동차 산업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주택난이 시작되는 것은 역사의 법칙입니다. 제1차 세게대전 뒤, 국민의 주택 부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놓고 유럽과 미국은 대조적인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유럽에서는 각국 정부가 임대료가 싼 공영주택을 대거 지었습니다. 그 이전부터 유럽 서민에게 집이란 소유하는 게 아니라 빌리는 게 통념이었습니다. 자기 집을 짓는다는 행위는 왕족이나 귀족 같은 일부 사람에게만 허용된 특권으로, 대중에게 집은 원래 거기에 있는 것을 빌리는 겁니다. 이는 목조 임대주택이 도시를 빼곡하게 뒤덮고 있던 전쟁 전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뒤 미국이 채택한 정책은 유럽과 전혀 달랐습니다. 미국은 도시 밖에 있는 녹지를 개간해서 교외라는 새로운 곳에 집을 지어 사람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때 함께 내놓은 시스템이 주택담보대출이었습니다. 교외의 내 집과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정책은 사회의 추진력이 되어 건설 산업은 물론 자동차 산업, 전기 산업, 금융업, 제조업까지 모든 산업을 활성화했습니다. '교외에 내 집을 사들인 보수적인 핵가족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미국 문화는 이렇게 확립됐고, 이 생활양식의 발명으로 미국경제는 유럽경제를 앞지르게 됐습니다.

 

세계를 재패한 '미국적 시스템'은 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허구적인 금융 시스템입니다. 이 허구를 점점 더 쌓아 올린 끝에 세계화로 불리는 금융자본이 이끄는 도박적인 자본주의가 출현했습니다. 잔디밭 위의 흰 집에서 모든 허구가 시작된 겁니다. 세계화라는 시스템은 잘 진행되면 흥청망청 하지만, 일단 그 가면이 벗겨지면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며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현재 세계는 유럽과 아시아,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조차도 이 힘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건축가 시대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 전에 "장래에 뭐가 되고 싶나?"라는 질문에 한 반 가운데 반 정도가 '건축가'라고 대답한 이상한 시대였습니다. 참고로 그다음이 의사였습니다. 이 두 직업이 아닌 다른 것을 지망하는 녀석은 괴짜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일쇼크가 일어나자마자 건축계는 단숨에 불황으로 반전합니다.

 

일본 건축계에는 마키 후미히코, 이소자키 아키라, 구로카와 기쇼라는 전후 제2세대라 불린 건축가들이 천하장사처럼 존재했고 그 뒤를 이어 안도 다다오를 비롯해 이토 도요, 이시야마 오사무, 이시이 가즈히로, 록가쿠 기조, 모즈나 기코라는 1940년 이후에 태어난 '떠돌이 무사'라 불린 세대가 등장해 주목을 모았습니다. 저는 세지마 가즈요, 반 시게루 세대의 전 세대에 해당하는 이른바 제3세대 건축가들입니다.

 

동급생 가운데에는 떠돌이 무사의 보스인 안도 씨를 동경해 대학원을 수료한 뒤 노출콘크리트건축을 흉내 내기 시작한 녀석도 있었습니다만, 똑같은 노출콘크리트를 한다면 그를 이길 수 없어서 저는 냉담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장인들에게 호통을 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물렀습니다.

 

AA스쿨

영국에는 'AA스쿨(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이라는 1847년에 창립된 건축 대학이 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프랑스 같은 권위주의적인 건축 교육에 대항하는 학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학교 건물은 런던 블룸스버리라는 곳에 있습니다. 학교 건물인지 공동주택인지 알 수 없는 외관으로, 설립 때부터 '클럽' 같은 성격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데, 이 학교가 지금은 영국 최고의 건축학교입니다.  AA스쿨의 특징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워크숍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손을 움직여 뭔가를 만드는 교육입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국 건축사에 찬연한 이름을 남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역시 원래는 위스콘신의 시골에서 온 시골뜨기였습니다. 그도 미국의 정통 건축 밖에서 온 사람이어서 당시 유럽의 영향을 받고 있던 미국 건축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로비하우스Robie House는 그야말로 르코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에 필적하는 혁명적인 작품입니다.

 

콘크리트와 나무

콘크리트의 시간은 콘크리트가 굳어지면서 완결됩니다. 콘크리트에 불로불사의 이미지가 있어서 비로소 영구히 자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 목조의 시간은 건물을 완성되면서 시작됩니다. 완성된 뒤에도 보수를 게속하지 않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만 정성껏 잘하면 콘크리트보다 훨씬 긴 수명을 얻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은 불로불사를 손에 넣은 것 같은 착각을 주지만 실은 나무보다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수선이라는 요소를 포함해서 두 소재 이면에 흐르는 시간 개념의 차이는 실로 큽니다. 

 

아버지

학창시절에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말도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척 엄하게 자라서 일단 아버지가 호통을 치면 항변도 말대답도 할 수 없습니다. 내 명분을 받아들에게 하려면 보고서를 써서 그 정당성을 드러내야만 했습니다.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업에 필요하다는 점을 학교 리포트 못지않게 진지하게 써냈습니다.

 

마룻바닥

샐러리맨의 정신 상태가 만연하면 건축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도 위험 회피가 첫 번째가 됩니다. 일례를 들어보죠. 일본의 모든 분양 멘션에는 아늑한 회반죽은커녕 페인트칠을 한 벽이나 소재를 그대로 살린 마룻바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벽에 생기는 작은 균열도 엄청난 손해배상청구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벽에 페인트를 칠하면 반드시 균열이 생깁니다. 집을 산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산 멘션의 벽에 금이 있다는 소리는 뭔가 중대한 부실공사를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파는 사람이 아무리 "표면에 칠한 페인트가 갈리지는 것뿐입니다."하고 이야기해도 '그 속까지 전부 갈라져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에 사로잡힙니다. 결국 맨션 전체를 다시 지으라는 말이 나오면 파는 사람은 더는 항변하지 못합니다. 

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어떻게 할까요? 맨션에는 비닐벽지 외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닐벽지라면 균열이 생기지 않으니까요. 

 

 

2015.012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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