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논어

주어 경원, 주어 동관, 주어 맹자

_물곰 2022. 9. 23. 23:26
반응형

 

2007년 18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막판에 MB가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결정적인 동영상이 터져 나왔다.

당시 동영상에서는 이명박이 직접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라고 발언하고 있다. 

이명박의 최대 위기였다. 한나라당은 긴장했다.

 

그때, 이명박 후보 편에 있던 나경원 의원이 이렇게 해명했다.

 

"내가"라는 주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가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할 수 없다"

 

주어가 없다는, 황당한 주장이었다. 그 후 나경원은 "주어 경원"으로 불리웠다.

 

4년이 지나, "주어 경원"을 뺨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이동관 청와대 언론 특보가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였다.

 

박지원 의원이 공개한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그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박지원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 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조사 과정에서 '로비스트 박태규 리스트' 혐의자로 이동관을 지적하자, 이동관이 박지원 의원에게 보낸 문자였다. 

 

이동관은 어떻게 해명했을까? "(제가) 그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에서 

주어 부분, '제가'가 빠졌다는 거였다.

"주어 경원"을 잇는 "주어 동관"의 탄생이었다. 

 

나는 맹자를 읽다가 주어가 빠졌다는 주장의 원형을 찾아냈다. 그 시초는 바로 맹자였다. 

 

심동이 개인적으로 맹자에게 "연나라를 쳐도 될까요?"라고 묻자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쳐도 되오. 연나라 왕 '자쾌'는 다른사람에게 연나라를 넘겨줘서는 안되었고, 연나라 재상인 '자지'도 연나라를 자쾌에게서 받아서는 안되었소. 만약 여기에 한 관리가 있는데, 당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해서 왕에게 아뢰지도 않고 사사로이 당신의 봉록과 작위를 그에게 주고, 그 사람 역시 왕의 명령도 없이 사사로이 당신으로부터 그것을 받는다면, 그 일이 옳은 일이겠소? '자쾌'가 '자지'에게 사사로이 연나라를 넘겨 준 것이 어찌 이것과 다르겠소?"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쳤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이 제나라에게 연나라를 치도록 권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아니다. 심동이 '연나라를 쳐도 되는지요?'라고 묻기에 내가 응수하기를 '됩니다'고 하자 그렇게 연나라를 친 것이다.

그가 만일 '누가 연나라를 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하늘의 뜻을 대신해서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칠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맹자, 박경환 옮김]

 

제나라가 연나라를 친 다음, 연나라의 장로들을 죽이고 청년들을 포로로 끌고 왔으며, 재물을 약탈하고 종묘를 헐어버렸다. 

맹자는 제나라 대부인 심동의 물음에 연나라를 쳐도 된다고 했으므로, 침략 전쟁을 부추긴 꼴이 된 것이다. 

 

맹자는 자신을 변론하여, '연나라를 쳐도 된다'고 한 것이지, '제나라'가 쳐도 된다고 한 적은 없다고 하였다. 

 

맹자는 동양의 소피스트?

맹자를 읽을수록 맹자가 유가의 덕목을 갖춘 '성인군자'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뛰어난 변론가로 다가온다. 

 

순의 동생 '상'은 날마다 순임금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순은 천자가 되자 그를 단지 추방했다고 한다. 만장이 왜 그런 것이냐고 묻자 맹자는 "사실은 그를 제후로 봉한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추방했다고 말한 것이다."고 답한다. 만장은 맹자의 이 같은 답변을 기대하고 다른 질문을 준비했다. "상은 대단히 어질지 못했는데도 유비 지역의 제후로 봉했습니다. 유비 지역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입니까? 어진 사람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는 벌을 주고 동생의 경우에 있어서는 제후로 봉했으니 말입니다." 순같이 어진 임금이 동생을 추방했다고 할 수 없는 맹자의 답에 있는 헛점을 파고들어, 그럼 그 지역의 주민들은 무슨 죄가 있길래 피해를 봐야 하냐고 따지듯 물은 것이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맹자의 답을 들어보자.

 

어진 사람은 동생을 대함에 있어서 노여움을 오래 간직하지 않고 원망을 묵혀 두지 않으며 친하게 대하고 사랑할 뿐이다. 그를 친하게 여기면 곧 그를 귀하게 해 주려고 하고, 그를 사랑하면 곧 그를 부유하게 해주려고 한다. 상을 유비 지역에 봉한 것은 부유하고 존귀하게 해주려고 한 것이다. 자신은 천자인데도 동생은 보통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친하게 대하고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맹자, 만장 상, 홍익출판사]

 

마음에 드는 답이라 할 수 없다. 순 자신의 인의를 위해 백성을 희생하는 걸 올바른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이는 맹자가 잘못 대답한 거라 생각한다.

 

 

2015.0111. 발행

2022.0923. 재발행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