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6.
<7년의 밤>을 먼저 읽었다. 놀라운 작품이었다. 작가에게 놀랐다.
그 다음엔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었다. (정유정, 대단하다!)
세번째 작품은 <28>이었다. 201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책이었다. 1년 반이 지난 겨울에 읽기 시작해 여름에 읽기를 마쳤다. (책 읽기가 느리다)
배낭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해외로밍을 해두지 않아 그간 한 번도 켜보지 않았던 물건이었다. 바깥세상은 바깥에 놔두고 싶었다. 단 한 달만이라도 히말라야가 삶의 전부이기를 바랐다. 실은 해외로밍을 신청하는 법도 몰랐다. 낮잠을 대신할 소일거리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서야 꺼내봤을 것이다. 나는 3000미터 고지에 올라선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두기로 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을처럼 황량한 모래바람이 부는 거리와 마을 외곽에 듬성듬성 우거진 침엽수림과 '천국으로 가는 길', 꼭대기 분화구까지 내려다보이는 안나푸르나 2봉...
전원을 눌렀다. 남편의 평가를 빌리면, 대한민국에서 2천명이나 쓸가말까한 퇴물 폰의 작은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아들 얼굴이 깔린 바탕화면이 떴다. 동시에 전화벨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찌나 놀랐던지 하마터면 전화기를 패대기쳐버릴 뻔했다. 손바닥에 뱀이 떨어졌다고 해도 그토록 질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보세요"하며 통화버튼을 누른 건 순전한 본능의 힘이었다.
"택뱁니다. 집에 계세요?"
기운이 쭉 빠진 나머지 목소리가 목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경비실에 놔두세요."
전화를 끊고 나자 버럭 화가 치밀었다. 손을 벌벌 떨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신사에도 전화 좀 해봐. 나 해외로밍 하지도 않았는데 전화통화가 돼. 이것들이 사람을 봉으로 보나. 요청하지 않은 서비스를 자기들 맘대로..."
남편이 자다 깬 듯한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동로밍 됐겠지. 요새는 그래."
남편은 통화가 된 김에 묻는 건데, 별 일 없느냐고 덧붙였다. 대답 대신 '자동로밍'에 대해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해외로밍을 해두지 않았으니 전화 걸지 말라고 말했을 때, 알려줬어야지. 남편의 답변은 이랬다.
"난 자동로밍이 되지 않게 했다는 말로 들었는데."
"그 택배기사도 좀 이상하잖아. 국제전화인 줄 알았을 거 아냐. 로밍 안내방송 나오잖아. 고객이 집에 있는지 확인하자고 비싼 요금 들여서 국제전화를 건단 말이야?"
"로밍요금은 전화를 받는 사람이 무는 거야. 그것도 몰랐어?"
내가 언제 외국에서 전화를 받아봤어야 알지. 전화를 끊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 정유정, 은행나무]
2015.0723.
정유정은 강하고 인상적이다. 사실적이고 강렬하다. <28>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전염병이 화양이라는 도시에만 머무를까? (그 정도로 강렬한 전염병이 서울로 퍼지지 않기도 어렵지만, 퍼지게 되면 사건이 너무 커진다.) 전염병이 어떻게 끝날까? 그 후의 이야기는? 소설에 담기도, 쓰지 않기도 어려워 보였다. 결말은 그런 이야기들을 살짝 비켜간다.
종의 기원
2016년 5월 예약구매 했다. 정유정 작가가 사인한 책이 도착했다. 펜트레이가 선물로 딸려왔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기 전엔 웬만하면 안 읽으려 했는데, 붙잡고 몇 시간을 읽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길 잘했다.
(내용과 상관 없는 느낌 두가지)
1. 책 제목이 거창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꼭 붙여야 했을까) 살인을 이해하기 위해 프로이트에서 시작해 정신병리학, 뇌과학, 범죄심리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으로 이어져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에 이른다 해도, '종의 기원'은 지나친 느낌이다.
2. 이번엔 왜 지도가 없을까? 작가 성격이라면 분명 군도신도시 지도를 그리고 시작했을텐데. (간단한 루트인데도) 도시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지도가 있더라면 좀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