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마이크 데이비스
정병선 옮김, 돌베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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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 "죽은 사람은 그 죽은 모습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역사의 장면 여기저기에 산재하는 1억의 시신들은 상상 속의 한 줄기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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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다수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으며, 누구도 추상적인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대재앙을 슬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개인화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읽거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가서 당시의 비참했던 실상을 알려주는 전시물을 관람하기 전까지는 유대인 대량 학살에 별다른 충격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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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학자들이 'H5N1'이라는 유전자 번호를 부여한 이 독감 아형이 처음 확인된 것은 1997년 홍콩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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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야생 오리와 기러기 수백만 마리가 정기적인 이동을 위해 캐나다와 시베리아의 호수에 집결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그때 번성한다. 연구자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어린 새들의 창자에서 무해한 상태로 왕성하게 복제되어 많은 양이 물속으로 배설된다는 사실을 1974년 처음 확인했다. 이 바이러스를 다른 새들이 섭취해 집결지에 모인 어린 철새의 무려 3분의 1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게 된다. 더구나 같은 군집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 마리의 오리 내부에도 다양한 변종 인플루엔자들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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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는 크게 A와 B와 C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인플루엔자 B와 C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 집단 속에서 순환하면서 길들여졌다... "유전학적으로 보았을 때, 수세기 전에 조류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군에서 갈라져 나온 듯하다." 인플루엔자 C는 통상 감기라고 부르는 것의 원인이며, 인플루엔자 B는 특히 어린이들이 많이 걸리는 전형적인 겨울 독감을 일으킨다. 물론 인플루엔자 B는 매년 상당한 수의 사망자를 낳기는 하지만, 이 둘은 대유행병의 위협과는 무관하다. 반면 인플루엔자 A는 여전히 야생의 상태이며, 매우 위험하다. 인플루엔자 A의 주요 보유숙주는 오리와 물새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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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자 A의 단백질은 해마다 아미노산을 바꾸어 새로운 백신이 필요한 변종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항원 소변이antigenic drift'라고 한다. 나아가 한 세대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조류나 돼지를 숙주로 삼는 인플루엔자 A가 인간을 숙주로 삼는 인플루엔자와 유전자를 교환한다. 다시 말해, 더욱더 과감한 돌연변이를 통해 종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를 '항원 대변이antigenic shift'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