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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

_물곰 2019. 8. 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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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우리나라에는 2018년 11월 출간되었다. 저자는 익명. 여자. 마티에서 출판했다. 여자는 전쟁 막바지 베를린의 상황을 남긴다.

 

굶주림

거리로 나오자마자 우유를 몇 모금 마셨다. 집으로 와서는 곡물가루 죽으로 배를 채웠고, 빵 가장자리 한 조각을 추가로 먹었다. 이론상으로는, 오랜만에 배가 부르게 먹었다. 실제로는, 지독한 허기에 시달린다. 먹기 시작하자 비로소 본격적으로 배가 고파왔다.

집주인이 모아둔 몇 권의 장서를 뒤져보다가 소설 한 권을 펼쳐 든다. 영국의 귀족사회가 배경인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왔다. "그녀는 손도 대지 않은 성찬을 힐끗 쳐다보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버렸다..." 나는 열 줄 정도 더 읽다가 곧장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다시 이 문장으로 돌아갔다. 그 문장을 열 번 이상 읽었고, 그러다가 손톱으로 그 글자들 위를 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손도 대지 않은 그 성찬을 - 성찬에 관해서는 이 문장 앞에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 낡은 책에서 파내 먹을 수 있기나 한 듯이. 미친 짓이다.

 

전쟁에서 화폐란.

익명의 여성이 쓴 <함락된 도시의 여자>를 읽고 있다. 1945년 봄,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에서 화폐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있어 옮긴다.

방금 내가 가진 현금을 세보았다. 452마르크였다. 이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살 수 있는 몇 가지 물품은 잔돈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은행 계좌에도 살 물건이 없어서 쓸 수 없는 돈이 1000마르크쯤 있다. (전쟁 첫해에 평화가 찾아오면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저축을 시작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많은 사람이 은행 문이 열려 있기만 하면 달려가 돈을 찾아온다. 대체 뭘 하려고? 만약 우리가 전쟁에서 지면 마르크화는 소용이 없어진다. 돈, 다시 말해 지폐는 허구일 뿐이고, 중앙은행이 밀려나면 더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아무런 감정 없이 돈다발을 주르륵 넘겨본다. 나에게 이것은 아무튼 기념푼은 될 것 같다. 몰락한 시대에 사용되던 소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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