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를 반 정도 읽었다. (아마 2014년부터 읽었으리라)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2년에 걸쳐 반을 읽었다. 한강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은 거라곤 그게 전부다. 채식주의자는 알지도 못했다. 맨부커상을 받고서야 알았다. 2004년과 2005년에 발표된 연작 단편 3편을 엮은 사실도 책을 받고서야 알았다.
(아,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란 건 알았지만, 그게 채식주의자 연작 단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몰랐다.)
첫 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음..
두번째 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기괴하다.
세번째 편을 읽었을 땐 아, 정말 대단하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마크 로스코와 나> 中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쳐지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도바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여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해부극장 2>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