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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감과 질료

_물곰 2016. 8. 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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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기는 드라마의 기법은 이제 인물 간의 대화까지 영역을 넓혔다. 드라마가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게 되면 대화는 2가지 정보전달 방식을 오간다. 하나는 질감(texture)이고 다른 하나는 질료(substance)다. 


질감은 실제 집도 중인 의사를 본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온갖 수사들이고 질료는 배경 질감 속에서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상황을 이해하도록 돕는 장치다. 


질감의 역할은 직접적인 이야기 전개와 무관할 때도 있다. 이때 이야기와 상관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 좋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60년대 롤랑 바르트는 "사실효과"를 다룬 단편수필에서 플로베르의 단편 <순박한 마음>에 등장하는 청우계를 인용한다. 바르트의 설명에 따르면 의미 없는 것을 통해 사실감을 표현하는 것이 사실효과다. 청우계는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떠한 상징적 의미도 없다.


<웨스트 윙>이나 <ER>같은 드라마에 넘쳐 나는 어려운 말들 역시 비슷한 기능을 한다. <ER>의 외과 의사들이 심장 우회술 도중에 OPCAB나 복제 정맥이라고 소리 지르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필요는 없다. 이는 단지 우리가 보고 있는 배우를 진짜 의사처럼 느끼게끔 하기 위한 도구일뿐. 이런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려면, 이런 말은 배경음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도 우리가 이런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스티븐 존슨, <바보상자의 역습>, 비즈앤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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