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Books

시인-소설가-한강

_물곰 2016. 8. 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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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반 정도 읽었다. (아마 2014년부터 읽었으리라)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2년에 걸쳐 반을 읽었다. 한강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은 거라곤 그게 전부다. 채식주의자는 알지도 못했다. 맨부커상을 받고서야 알았다. 2004년과 2005년에 발표된 연작 단편 3편을 엮은 사실도 책을 받고서야 알았다.

(아,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란 건 알았지만, 그게 채식주의자 연작 단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몰랐다.)


첫 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음..

두번째 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기괴하다.

세번째 편을 읽었을 땐 아, 정말 대단하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마크 로스코와 나> 中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쳐지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도바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여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해부극장 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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