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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다시, 을지로 &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_물곰 2019. 8. 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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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17가지 키워드로 읽는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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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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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시대의 상징이던 을지로가 전시와 음악, 커피와 와인,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을지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에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임동근과의 짧막한 인터뷰가 실려있다. 이를 일부 발췌하여 옮긴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보이는 을지로에 젊은 층이 매력을 느끼고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조업이 쇠락하기 시작하고 도심의 미화 운동이 이루어지면서 낡은 모습의 건물들과 비어 있는 사무실 등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그 빈자리를 젊은 예술가들이 메웠다. 동네 자체가 처음 들아기는 힘들어도 한번 들어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잠시 저평가되어 있지만, 이곳은 서울의 '진짜 중심'이다. 교통 환경과 기반시설이 풍부하게 깔려 있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게 당연하다. 조건이 워낙 좋으니 곧 뜰 거다. 재개발이 멈춘 상황일 뿐, 그 흐름은 계속 밀려들고 있다.

'뜨는 동네'의 수순을 밟고 있는 을지로에서는 유독 새로운 의부인의 진입을 불편해하는 태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연남동이나 연희동, 상수동은 커피나 물을 파는 서비스업에 가깝다. 이런 경우 SNS에 올리든 뭐를 하든 간에 고객이 와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젊은 친구들의 아지트다. 내 물건이 좋으면 그만인 거지 굳이 이곳으로 외부인을 불러 모을 필요가 없다.

이곳의 젊은이들과 도시재생사업을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서울시 행정 사이의 괴리는 불가피한 건가?

그 비싼 땅에서 지금의 임대료를 내고 지낼 수 있는 건 정말 잠깐일 거다. 을지로는 개발되고 있는 동대문과 광화문의 양쪽 틈에 끼어있다. 작은 펍이나 카페 등을 차리는 건 일시적인 활동이 될 거다. 이때 임대료가 올라 쫓겨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임대료가 올라 쫓겨나는 현상은 서울 도처에서 발생해 사회적으로 많이 이슈가 된 문제다. 그러나 해결책이 마땅치 않기에 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임대차보호법을 강화하긴 했지만 환산보증금 6억 1천만원 이하 상가만 대상이 되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상가가 많으며, 기간도 5년 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를 환산보증금 9억원, 기간 10년으로 늘리려 한다. 이에 더하여 임동근 교수가 말한 것처럼, 적더라도 공공이 예술가의 활동을 위한 공간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

 


 

을지로 지명의 유래

1946년 일본식 마을 이름을 정리하는 사업을 하며, '을지로'라는 새로운 길 이름이 생겼다.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을지로는 일제시대부터 제조 산업이 시작되었다. 종로 일대는 상업가로 활용되고, 을지로에는 20년대와 30년대를 거치며 방직, 식품, 인쇄업 등의 공업 시설이 늘어났다. 해방후 50, 60년대 을지로는 주거와 상업이 혼재된 지역으로 성장했다. 종로 종묘부터 퇴계로까지 1킬로미터가 넘는 소개공지에 세운상가가 들어서며, 최신 시설로 주목받았다. 그때가 을지로의 전성기였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1980년 '을지OB베어'가 문을 열었다. 개업 초에는 주류 업계가 제공하는 마른 안주를 제공했으나 법이 바뀌어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탄생한 새로운 안주가 '노가리'라고 한다.

노가리 골목은 의도치 않은 법 개정이 만든 문화다. 1980년 노가리 골목의 시작을 알리는 '을지OB베어'가 문을 열었다. 개업 초기만 해도 OB맥주에서 김, 땅콩 등 마른안주를 공급받아 제공했지만, 개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법이 바뀌면서 주류 업체의 안주 제공이 금지되었다. 을지OB베어의 초대 사장님은 직접 제공하는 안주를 고민해야 했고, 고민 끝에 노가리를 주력 안주로 결정했다. 매일 아침 떼어 와 직접 두드린 노가리와 '비법'이 담긴 소스를 함께 제공하면서 '노가리와 맥주 한 잔'은 근처 인쇄 공장 노동자들의 입소문을 탔다. 이후 이 일대에 우후죽순 들어선 각종 호프들도 노가리를 대표 안주로 삼으며 노가리 골목이 만들어졌다. 다시, 을지로

 

불경기가 오래간 계속되던 1980년 겨울, 인쇄소와 제지 공장만이 즐비했던 이 골목에 '을지OB베어'라는 간판을 내건 맥줏집 하나가 턱 들어섰다. 불황의 여파로 생맥주 판매량이 급속히 줄어들자, 타개책을 모색하던 당시 동양맥주가 소형 생맥주 목로주점 'OB베어' 가맹점을 모집했다. 을지OB베어는 그 2호점이다. 신선한 생맥주 한 잔이 380원. 안주로는 어린 명태인 노가리를 연탄불에 구워 100원에 팔았다. 이곳을 '노가리 골목의 시초'라 부르는 이유다.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현재 노가리 골목엔 17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비슷해 보여도 노가리 종류나 특제 고추장 제조법 등 업장마다 미묘하게 매력이 달라서, 취향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아는 사람만 찾던' 을지OB베어 옆에 어느샌가 똑같이 노가리를 구워 맥주와 파는 가게가 하나둘씩 늘더니 차츰 골목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IMF가 닥치자 지갑이 가벼운 근처 직장인들까지 값싼 노가리 골목을 찾으면서 상권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늘어난 손님을 모두 수용하기엔 가게가 너무 비좁아 바깥에 간이 탁자를 깔고 이들을 앉혔다. 가로등 밑 노상에서 맥주를 마시는 야장 문화는 이처럼 자연스레 형성되었고 곧 이곳의 상징이 되었다. 옥외 영업은 불법이지만, 공동화 현상으로 삭막해지는 밤길을 밝혀주었기에 시에서는 그러한 영업 방식을 암암리에 눈감아주었다. 그러던 2015년, 노가리 골목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며 합법화의 길이 트였다. 39년 역사가 만들어온 특유의 감성이 미래 세대에 물려줄 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힘을 받은 일대 상인들이 옥외 영업 허가를 정식 요청했고, 중구청은 가게들이 도로점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옥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2017년 5월에 조례를 개정했다.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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