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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다녀와서 읽는 파리

_물곰 2020. 11. 1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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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파리의 장소들

 

- 어느 유학생이 파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파리를 15년 넘게 걸어 다녔지만, 파리의 어느 장소에 가면 마치 처음 와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게 바로 파리의 매력이다. 여러 번 만났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신선함을 간직한 장소들이 숨어 있기에 파리에서는 같은 길을 자꾸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 발자크가 말했듯이 파리는 수심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대양이다. 파리를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새로운 파리가 나를 기다린다.
- "파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위대한 도시 파리, 무엇보다도 그 다채로움에서 비교할 바 없는 파리, 프랑스의 영광, 이 세상의 가장 고귀한 장식들 가운데 하나인 파리를 통해서만 나는 프랑스 사람이다. 나는 파리를 부드럽게 사랑한다. 파리의 흠과 티까지도." (몽테뉴)

 

- 프랑스인은 대부분 포크를 왼손에, 나이프를 오른손에 쥐고 식사한다. 영국인과 비슷하고 미국인과는 반대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이 부분에서 융퉁성이 있으며 때로는 왼손에 숟가락, 오른손에 포크를 들고 파스타 그릇을 공략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 뉴욕에서는 모두들 어느 정도의 소음을 예상하고 그 소음을 넘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큰 소리로 말하는 습관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프랑스인은 다른 사람들이 레스토랑에서도 조용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할 권리를 존중한다.

 

- 프랑스는 좋지만 프랑스인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들에게 파리에서 살았고, 프랑스를 사랑한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반박을 들려주고 싶다. "어떻게 외국인이 프랑스를 좋아하지만 프랑스인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좋아하는 프랑스를 만든 것은 바로 프랑스인들이며 프랑스를 프랑스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바로 프랑스인들인데 말이다."
- 프랑스인은 자신들의 허세와 자기 홍보 경향을 선뜻 인정한다. 그들도 그 이유는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와인과 향수, 패션과 항공기술, 심지어 자신들의 나라까지 세계에 성공적으로 홍보해온 방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했으며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법을 안다.

 

- 기원적 900년에 켈트족은 라인 강을 건너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땅 대부분을 지배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대서양 건너 영국 제도까지 진출했다. 켈트족은 단일 민족이 아니라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끊임없이 싸우는 호전적인 소규모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지리적 조건에 적응했다. 이미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아마 켈트족에 동화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 로마인들은 이 켈트족의 땅을 골 또는 갈리아라고 불렀다. 기원전 121년, 그들은 지중해 연안과 현재의 프라방스와 랑그독 지역 대부분을 정복했다. 기원전 58~51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또는 줄리어스 시저)가 갈리아 전쟁에서 현재 프랑스 땅의 나머지 지역을 장악했다. (브르타뉴 지역에 살았던 유난히 혈기왕성한 켈트족은 저항에 성공했다. 콘월과 웨일스, 스코틀랜드에 정착한 켈트족들도 그랬다.)
- 프랑스인은 그야말로 짬뽕이다. 로마 문화와 언어를 기꺼이 받아들인 골족(이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지만)이 있었고 색슨족과 바이킹, 무어인 그리고 영국인 침입자들이 차례로 이곳에 왔다갔다.
- 오늘날 프랑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사실 프랑스를 침공한 모든 부족과 인종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이곳으로 몰려온 모든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 프랑스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질서가 존재하는데,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 오늘날 프랑스에 왕실은 없지만 조용하고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상류층 계급이 여전히 작위를 세습하고 지위를 누리고 있다. 입학 경쟁이 치열한 엘리트 양성 교육기관인 그랑제꼴이 500여 곳 있으며 재계와 정계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곳 출신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프랑스 사회에는 '세습 엘리트'와 '자주성가 엘리트'가 공존하는 셈이다.

- 4세기 동안 꽃을 피운 위대한 문학과 철학은 프랑스인의 사고에 정치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심어주었다.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프랑스에서 발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 원칙은 이곳에서 치열하게 수호되어왔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인들은 민주주의 원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두고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토론한다. 프랑스에서 영웅은 록스타가 아니라 정치인과 문인들이다. - 작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샤토브리앙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치가 없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지루할까."

- 늘 명랑 쾌활하고 열정적인 미국인이나 예의바르고 소심한 아시아인들에게는 공적인 면에서 프랑스인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태도가 개인적인 묵살로 비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인의 이런 행동은 상대방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도 공적으로는 최대한 냉정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기실 그들은 열정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 프랑스인들은 언쟁 또는 논쟁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프랑스인은 그것을 '토론'이라고 부르는데, 장시간 그렇게 토론을 벌이곤 한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골족이 말싸움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프랑스인과 있으면 따분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프랑스인은 따분한 것이라면 질색을 한다. 코코 샤넬은 조언한다. "따분함으로부터 달아나라. 따분함은 우리를 살찌게 한다."

- 프랑스인과 일본인의 차이는 매혹인 동시에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2006년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겪은 '파리 신드롬'이라는 증상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머릿속에 품었던 기대와 환상에 어긋나는 프랑스의 실체를 목격한 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 증상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 친절하고 다정한 일본과는 전혀 다른 프랑스 문화에서 온 충격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었다. 

 

- 프랑스에서는 싼 물건이 거의 없다.
- 굳이 꼽으라면 식품과 와인, 가정용품 정도가 그나마 싼 물품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가격이 통제되는 품목은 기본적인 빵(바게트)과 의약품뿐이다. 싼 제품을 구하고 싶다면 파리 도처에 있는 할인점 '1달러 숍'에 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 프랑스어로 불랑제리라고 하는 빵집은 일요일을 포함해 매일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이렇게 하루 도 번씩 길쭉한 바게트를 구워서 판매한다. 프랑스인들은 아무리 궁해도 한 나절이 지난 빵은 사지 않는다.

 

- 프랑스인들은 자기 만족감으로 가득하다. 코코 샤넬의 말이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인, 특히 파리 사람들의 겉모습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 프랑스인들은 외출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샤넬 본인도 정장을 한 벌 마련해서 7~8년씩 입었다. (드라이클리닝을 자주 할 수 없어서 향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20년 이상 입을 수 있는 재료를 선택했다.
- "우아함은 태만의 반대"라고 그녀는 말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파리와 홍콩, 뉴욕에 이르기까지 패셔니스타들이 많은 거리에서 샤넬 스타일의 검은 원피스와 고전적인 정장과 짧은 단발머리를 한 여성들을 볼 수 있다.

 

- 시장에 가보면 프랑스인은 어떤 동물의 어떤 부위건 닥치는 대로 먹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특정 동물, 특히 작은 개와 고양이는 오히려 인간보다도 나은 대접을 받는다.
- "동물에 대한 프랑스인의 태도는 자인함과 무관심과 애정이 엽기적으로 뒤섞여 있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종달새나 지빠귀를 쏘거나 시장에서 살아 있는 토끼를 우리에 가둬두고 판매한다... 그들은 절대 비위가 약하지 않다.... 그런 프랑스가 갑자기 애완동물 애호가들의 나라가 된 것 같다.
- 프랑스, 특히 파리에서 개와 고양이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다. 
- 거리에서도 카페에서도 상점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끊임없이 짖어대는 작은 푸들을 누구 하나 거슬려하지 않는 것 같다. 만일 사람이 똑같은 강도의 소음을 냈더라면 당장 경찰을 불렀을 것이다.

 

- 애완동물이 얼마나 호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끔찍한 증거는, 다른 면에서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파리의 거리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동물 배설물이다.
- 외국인 여행자들은 파리에서는 개똥을 피하기에 바빠서 건축물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다고 불평한다. 애완동물 주인들은 주인이 적접 배설물을 치우도록 한 '개똥처리법'도, 애완동물이 배설할 기미를 보이면 주인이 재빨리 차도 가장자리로 데려가도록 상기시키기 위해 보도 위에 그려놓은 하얀색 개 그림도 무시한다. 파리 사람들은 작은 강아지들이 거리에 남긴 흔적은 너그러이 참아주면서도 중국에서 아이들이 배수로에 소변을 보는 것을 제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 프랑스의 교통은 짜릿하거나 무시무시하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당신의 삶에 대한 애착과 프랑스 도로법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프랑스 사람들은 일단 운전대를 잡으면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2002년까지 프랑스는 유럽에서 교통사고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결국 시라크 대통령이 결단해 엄격한 교통법을 집행함으로써 사망률을 20퍼센트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프랑스 고속도로는 유럽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독일보다도 위험하다. 

 

- 2007년 여름, 프랑스에서는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다. 파리가 벨리브라고 하는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벨로 리베라씨옹(자전거 해방'이란 뜻이다.
- 벨로브를 최초로 시행한 도시는 리옹이다.
- 자전거는 프랑스에서 발명되었고 거의 모든 프랑스인이 도로 사이클 경주의 팬이다. 특히 뚜르 드 프랑스 대회는 여름휴가의 시작을 알리며 많은 열성 팬을 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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