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의 이끼를 보고 왔습니다. 언론에서 호평이 많아 조금 괜찮으려나 기대를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무래도 원작 만화를 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네요. 몇 가지 영화를 보고 생각났던 것을 적어보았습니다. (한 번 보고 생각나는대로 간략하게 적었던 글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시네요. 뭔가 보완이라도 해야 싶은 생각이 마구 드는 글입니다. 2014.08.)
1. 엉성한 스토리
- 원작의 스토리를 짧은 시간(사실 짧지는 않습니다. 2시간 40분이면..)안에 압축하려다 보니, 이야기가 듬성 듬성합니다. 류목형(허준호)과 천용덕(정재영)의 반목.. 교도소의 수인들을 감화시키던 초반의 류목형 모습과 후반의 장면에서 나오는 고리타분한 설교자로서의 류목형 모습은 너무 괴리감이 커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류목형과 함께 정의를 이루려고 하였던 천용덕의 의도 역시 갑자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2. 원작과 다른 결말
- 영화 결말에 충격 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였던 걸까요?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원작과는 달리 <모든 것은 이영지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으로 반전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라, 감독의 무리수로 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로 돌아온 류해국(박해일)은 이영지(유선)와 마주칩니다. 서로 눈길을 주고 받으며, 류해국은 상황파악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그 마을로 불러들였던 그 목소리가 불현 듯 떠오르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오셔야겠죠?" 하였던 목소리, 바로 이영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왜 이게 마지막에야 떠올랐을까요? 마을에 여자가 한 명 뿐인데.)
이영지는 류해국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마을로 불러들였고,
자신의 복수(또는 이익)를 위하여 류해국을 돕습니다.
라디오와 테이프를 가져다 놓고, 예리한 물체에 찔려 자상을 입고 쓰러진 류해국을 치료해 주고, 낫에 잘려 죽을 뻔하고 불에 탈 뻔한 류해국을 살려준 것도 모두 이영지였습니다. 마지막에는 검사까지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죠.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오셔야겠죠?" 하는 것이 너무 반전을 드러내기 위한 억지스러운 말투(그렇게 의도적인 말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반전의 목적일 뿐..)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천용덕에게 복수하기 위해 류해국을 불러들였다고 하기에는 류해국은 힘이 너무 약했고, 사실 여러차례 죽을 뻔했습니다. 운이 좋아 류해국에 얽힌 검사가 있어 천용덕에 대한 복수라는 자신의 뜻까지는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이영지가 마을을 장악할 수 있을까요? 천용덕의 재산이 이영지에게 갈 만한 근거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천용덕에게는 경찰 아들도 있죠.. (그 아들이 이영지의 아들이라면 모를까..)
3. 여전히 남은 의문들
- 교인들을 죽인 것은 류목형인가? 천용덕인가? 영화에서 류목형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지식하고 선한 사람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갑자기 교인들을 죽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천용덕이 죽였다고 봐야할까요? 교인들이 독약을 마시고 죽었는데 천용덕이 주방에 들어가 독약이라도 탔다는 것일까요?
- 류목형을 죽인 것은 이영지일까요? 류목형이 죽은 것을 이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발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아들 류해국이 찾아옵니다. 영화 상에서 본다면 그 시간 차이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이영지가 먼저 류해국에게 전화를 걸고, 류목형을 죽였다는 순서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단순히 그 시간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것은 영화에서 장면을 압축하다 보니, 류해국이 도착하는 장면까지 거의 비슷한 시점으로 담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류목형이 자연사로 죽었는지, 아니면 이영지에 의해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죽임 이후 이영지가 류해국에게 전화를 건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류목형이 자연사로 죽었다기에는 마지막 장면의 "오셔야겠죠?" 라는 이영지의 목소리가 너무나 태평스러워 이래저래 영화의 일관성이 없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저래, 영화를 보고 와서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는데..
짧게 줄이자면, 영화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는 영화 중반까지는 긴장감이 있어 재미있고, 볼 만하지만, 마을 이장 천용덕의 입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흘러 나오는 시점부터는 엉성한 스토리, 일관성 없는 결말로 별로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욕까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재미없습니다! (개인 취향입니다. 재미있게 보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다음의 감상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 링크를 걸어 둡니다.
스토리 사슬이 끊긴 영화,강우석 '이끼' http://www.aynews.net/sub_read.html?uid=3349
씨네 21 리뷰 http://www.indieforum.org/xe/5454
윤태호 원작 만화 작가 인터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21564
강우석 감독 인터뷰 : http://blog.hani.co.kr/dreamingmoon/36603
2010.07. 펴냄
윤태호 원작 '이끼' 만화 내용 추가 (2016.10.)
윤태호 원작 만화는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올 칼라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와 달리 모호한 구석이 별로 없습니다. 마을의 시작과 결말,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이야기 합니다. 윤태호 씨의 인터뷰대로 만화와 영화는 많이 다릅니다. (저는 만화를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 전화를 거는 건 이영지가 아니라 천용덕입니다. 만화에서는 천용덕이 하수인을 시켜 류목형 아들에게 전화를 걸게 합니다. 류해국의 번호를 찾아주는 이도 천용덕입니다. (수첩에서 류목형 아들 번호를 찾아 알려줍니다)
- 교인들을 죽이는 것은 류목형과 천용덕이 합의한 사항입니다. 자신을 믿지 않고 배반한 교인들에 대한 보복으로 보입니다. 류목형은 그들을 청산가리로 죽이자고 했지만 천용덕이 칼로 사람을 죽입니다.
- 천용덕의 경찰 아들은 친아들은 아닙니다. 천용덕이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며 키웠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영지가 쌓아둔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 같이 죽습니다.
- 류목형은 자연사 했습니다. 마을에서 류목형은 입지를 잃고, 힘없이 살다 죽었습니다.
- 이영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그들을 벌하는게 목적이었습니다. 류목형에게 의지했지만, 류목형은 힘을 잃었고, 류목형은 아들이 오거든 의지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류해국을 돕게 됩니다. (증거가 그렇게 많았다면 왜 증거를 가지고 탈출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요? 증거는 숨겨두었으니 일단 몸만 빠져나가 다른 지역 검찰이나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하며 증거를 확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만화에서도 그 이유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